2007년 09월 26일
FC 코스모. 02
코스모시티의 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한 '아스탈리움'은 1만 9000석의 작고 소박한 경기장으로, FC 코스모의 경기뿐만 아니라 시의 이런 저런 클럽들이 사용하곤 한다. 건공이후 한번도 재공사가 되지 않은 스타디움은, 잔디보호용 열선이나 최신식의 배수시설이 되어있을리 만무했고, 그나마 지붕도 없어서 관중석도 사계절에 관계없이 햇빛에 노출되는, 그야말로 옛날식의 경기장이다.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엘레나 이나키는 햇살을 가리기 위해 이마에 손을 댄채로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러한 경기장에 대해서 맘속으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완연한 여름인 지금, 햇살을 따스하다 느끼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고, 그늘도 없는 아스탈리움에서, 촬영을 하기 위해 모인 듯 보이는 사람들과 그들의 장비는, 그야말로 구워져갔다.
'이런 썩을 경기장 같으니라구'
'아스탈리움'이라고 써있는 정면의 입구를 향해 한번 쏘아주고 그녀는 플라스틱병안의 마지막 물을 입에 쏟아 넣었다. 지역방송의 스탭인듯 보이는 간소한 규모의 촬영팀이 그녀의 주변에서 장비들을 정리하는 가운데, 충분치 못한 물의 양을 저주하며 그나마 시원한곳을 찾아 두리번 거리던 엘레나는, 마침 그녀의 생각에 매우 부합하는 자리인 골대 뒤편에 드리워진 전광판의 그림자로 달려늘어가 냉큼 누워버렸다. 간판을 기대고 콘티책을 손에 쥔채 부채를 부치던 그녀의 옆에 더욱 짙은 그림자가 늘어서며, 그녀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힘들지"
"뭐 평소엔 힘들진 않지만, 오늘같은 날씨에는 좀 그렇긴 하죠, 아빠"
현재의 엘레나 이나키는 FC 코스모의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딸의 이런 모습은 훌리우 이나키가 바라것과는 많이 달랐고 훌리우는 약간의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훌리우는 그저, 초등교육시절부터 엘레나가 관심있어했던 축구에 대해 더 좋은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러한 훌리우의 배려속에서 엘레나의 재능이 꽃피길 바랬지 이런 방송일을 하며 많은 사람의 시선을 모으는 일을 하길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축구에 대한 재능이 있었고, 많은이들에게 축구의 tactic에 있어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커왔지만,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전술의 천재'와 '지역팀의 아이돌'. 엘레나를 표상하는 단어 사이의 어감상의 큰 간격이 그녀에게 있어 0으로 수렴하는 이유는, 전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바람직한' 여성상을 가르키는 '지성과 미모'가,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되었을 뿐인, 그녀에게 갖춰져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후안 로페즈에게 이 녀석을 소개시켜 줬던게 실수였어'
훌리우는 문득 그의 떠벌이 동료기자인 후안 로페즈를 떠올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4년전 로페즈가 썼던 지역지 기사만 없었다면 엘레나가 언론에 왔다갔다 하는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줄곧 가지고 있었다. 그 기사이후, 서포터들이나 주민들이나 상관없이, 그녀는 화제의 존재가 되었고 이러한 이슈의 중심에 있는 인물에게 미디어의 손짓이 없을리가 없었다. 어찌되었건, 현재의 엘레나는 그가 생각하는 학생의 위치에서 매우 벗어난 곳에 있었지만, 그는 이러한 그녀의 위치를 바라보며 적절한 어드바이스를 해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생각보다 너무 빨리 허물을 벗고 세상 밖으로 날아가버렸다.
"오늘 저녁에 약속 있는것 아시죠?"
"그래. 6시에 브론조 감독의 집 앞에서 보자꾸나. 일이 있어서 가봐야 겠다"
두 부녀의 대화는 채 10분을 넘기지 않고 끝났다. 학업과 방송을 함께하는 엘레나나, 기자면서 딸의 미래를 위해 여러가지 뒤치닥거리를 하는 훌리우나 바쁘기는 마찬가지였고, 그들의 대화는 서로의 일정을 공유하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남들에게는 무미건조 해보이는 둘의 관계였지만, 딱히 혈연의 정이 없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두 부녀간에는 '축구'라는 의사소통의 매개체가 있었던 까닭에 오히려 친구같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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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탭들이 떠난 그라운드의 한편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난 엘레나는 양손을 머리위에 쭉펴며 하품을 했다.
'너무 심심해'
어머니 없이 자랐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어렸을때부터 다른 여자아이들의 취미생활은 그녀의 취미생활로 연결 되지 못했다. 엘레나는 인형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희안한 취미를 가진 -물론 또래의 여자아이들의 인식으로는- 아이였고, 그러한 책들을 읽어나가며, 주위의 아이들은 너무나 시시하다고 느껴버린 그녀는, 어른들의, '아빠의' 취미인 축구에 빠져버렸다. 주변의 사람들, 특히 주변의 '아줌마'들은, 또래의 아이들처럼 꾸미기보다는 축구장에서 경기를 관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엘레나와 이를 더 부추기는 듯이 보이는 훌리우에 대해 '홀애비가정이 뭐 그런거'라고 촌평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나마 최근에는 방송에도 나가고 이런 저런 이유로 유명인이 되어가며, 제법 여자의 행실을 갖춘듯 보이는 엘레나로 인해 이런 평가들은 사그러 들었지만, 엘레나에게 있어 아직 축구>책>ect. 라는 공식은 여전했고, 엘레나는 '방송일은 그 또래 여자애들이 가지고 있는 허영의 일부분이 아직 그녀에게도 남아있기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기에 엘레나에게 있어서는 가끔씩하는 리포터나 보조해설 같은 일 보다는 2주마다 한번씩 모이는 '축구를 즐기는 코스모의 밤'이라는 모임이 더욱 흥미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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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7/09/26 17:30 | 맛스타일지 | 트랙백 | 덧글(0)


